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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by s코치 2022. 9. 3.

정서적인 스트레스는 세상(환경, 외부, 타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우리 내면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몸은 지각력이 없다. 몸에는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직 오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오감 자체도 자신을 경험하는 능력은 없다. 몸의 경험은 먼저 뇌 속에 등록된다. 하지만 이 경험에 대한 인식은 뇌 자체보다 더 훨씬 더 큰 어떤 것, 즉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마음의 에너지장 때문에 뇌와 몸이 경험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이나 기억을 경험하는 것도 ‘의식’이라는 더 크고 거대한 에너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경험은 오직 의식 안에서만(자각) 경험된다. 에너지장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몸은 자연히 건강해진다. 낮은 에너지 차원의 태도에 공감하는 삶은 확실히 세계를 부정적인 곳으로 인식한다. 무력감이나 절망의 낮은 에너지장에 공명하는 사람은 세상을 절망적인 곳으로 경험하고 삶의 모든 경험도 이런 생각으로 왜곡하여 바라본다. 이런 상태는 스트레스를 저절로 받아들이는 상태이다.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삶에 대한 자세와 믿음 체계, 내면의 가치 등에서 생겨난다. 삶의 태도와 방식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체계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낯선 경험에 극심한 혼란을 느낀다. 에너지장이 높은 곳에 가더라도 에너지장이 낮은 사람은 그 환경을 힘들어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자리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그들의 경험은 환경이 아니라 각자의 의식 수준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의식 수준으로 환경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자신의 의식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스트레스를 이야기할 때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외부의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반응한다는 것은 마음속의 것에 몸이 반응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품은 것들, 기대나 삶의 태도를 바꾸면 스트레스를 예방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것의 근원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는 ‘저기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가 쓰는 안경과도 같다. 빨간 안경을 쓰고 있다면 세상을 모두 빨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슬픔의 에너지장이라는 회색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슬프게 보인다. 이 에너지장에 지배당하면 거리를 걸을 때도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인다. 거리를 지나다가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가 이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슬프게 보일 뿐이다. 인간이나 인간이 지닌 조건을 생각해 봐도 신문을 펼쳐 봐도 모든 일이 절망적이다. 즉 슬픔의 에너지장에 있는 사람들은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이 인식한 슬픔을 경험한다. 흔히들 ‘저기 바깥’에 행복과 스트레스의 근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면-회사를 바꾸면, 환경을 바꾸면, 거기에서 벗어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 자체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경험일 뿐이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진실을 인정하고 사실을 직시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하는 순간 우리의 에너지장이 달라진다. 상황을 직면하고 이겨 내고 다룸으로써 힘을 다시 얻는다. 자신의 힘을 되찾아 진실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용기라는 에너지장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을 도전과 성장, 기회의 장소로 본다. 그러나 그 이하의 단계의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것이 용기의 단계에서는 성장을 위한 기회와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경험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은 우리의 의식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많은 입장들을 기꺼이 내려놓으면 더 이상 방어할 필요가 없다. 방어는 스스로 자부심과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이며, 언제나 ‘옳고’ 싶은 욕구의 결과이다. 자존심이 상처 나고방어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스트레스가 생겨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은 경험자이지 경험 자체가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에 휘둘리는 대신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부당한 세상을 향한 분노 하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은 ‘사건’ 때문이 아니다. 초연한 사람은 특별한 감정 없이 이 사건을 해결한다.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는 마음이나 타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덜어 주고 의지가 되어 주려는 욕망은 내면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저기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면 위험부터 보는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정말로 자신감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 본성의 부정적인 면이나 이것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들을 받아들일 줄 안다. 원치 않는 것에 저항할 때는 스트레스가 일어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을 때는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문제는 내면에 있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간단다. 삶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태도를 바꾸기만 하면 된다. 삶에 대한 사랑은 유머라는 에너지장을 포함한다. 유머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삶 자체의 본질까지 웃어넘길 수 있는 삶의 모든 희극성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들어있다.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 투사물과 계속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삶을 기쁘고 조화롭고 편안한 것으로 경험할지 아니면 적으로 경험할지는 자기 내면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려있다. 삶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의식의 본질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경험하고 내면의 생기를 즐기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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