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의 A씨는 중소기업 대표인 남편과 대학생 아들과 살고 있다. 요즘 들어 A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도 자살 충동에 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남편의 사업을 돕고 아이를 키우느라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요즘에는 남편의 회사 사정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엄마의 간섭이 불편하다고 표현한 아들의 말에 마음 둘 곳이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A씨의 첫인상은 무척 예의가 바르고 상대방을 무척 배려하는 행동이 드러나 있었다. 문제는 예의범절이 과하게 표현되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불안과 근심, 걱정이 많았다. 잠이 오지 않아 밤늦게 잠이 들더라도 2시간 이내에 깨곤 했다. A씨의 경우는 불안증이 심한 경우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남편 사업에 대한 걱정이 심해졌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왔기에 남편이 잘못된다고 생각하면 절망스러워지고 앞이 캄캄해지는 경우를 자주 접했다. 아들에 대한 불안도 가중되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 생활하는 아들이 늘 염려되어 전화하고 방문해서 이것저것 챙겨주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의 간섭이 힘들다는 아들의 타박에 A씨는 마음이 상하여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날 남편이 긴 한숨을 쉬며 회사 사정이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자 그동안 남편을 의지했던 마음이 무너지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순간 어지럼증과 가슴이 답답함을 느껴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관심을 쏟는 아들에게 상관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고 믿었던 남편 마저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 A씨는 더 이상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일 남편에 대한 걱정과 상처 준 아들에 대한 생각으로 우울증이 찾아왔고 이대로는 더 살 수 없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A씨의 이런 자살 충동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며 계속 진전되는 상태였다. A씨는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그녀의 어머니는 신경질과 편애, 심한 욕설, 심한 매질로 자녀들을 키웠다. 가장 큰 피해자는 장녀인 A씨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양있는 분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그녀의 어머니가 늘 그녀에서 던진 말은 "너만 아니었으면 저 인간하고 역이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이었다. A씨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 대신 동생들의 밥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집 안에 온갖 일을 다 감당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늘 어머니에게 혼이 났고 동생들의 잘못도 장녀의 몫으로 돌아가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때 그녀에게 몸에 밴 것은 '눈치'였다. 이리저리 살피고 잘못한 것이 없는지 돌아보고 늘 조심해야 했다. 잠들기 전까지 그녀는 '불안'감에 늘 안심할 수 없었고 잠이 들면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결혼은 도피처였다. 어머니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남편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연애의 기간도 가지지 않고 남편의 요구대로 서둘러서 결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불안과 눈치는 부부생활에서도 이어졌고 남편은 늘 불안해하고 눈치만 보는 아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 A씨에게 노출된 불안의 환경은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뇌과학의 영역에서 살펴보면 편도체가 민감해져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우리 뇌에서 신경 연결망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은 '뇌유래신경영양인자'라는 신경 물질이 담당한다. 이 물질은 신경의 생존을 돕고 손상을 회복하는 역할도 한다. 어린 시절 A씨와 같이 불안과 눈치, 걱정이 반복되는 상황을 경험하면 위협을 인식하는 뇌의 편도체가 민감해지고 위협에 반응하는 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만성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게 만든다. 이때 부신피질 호르몬 증가가 만성화되면 뇌 신경의 연결망 형성을 방해하게 된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K씨의 경우 과거에 경험한 상처,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의 일상적인 경험, 사건, 사람(대인관계)까지 위험하게 받아들이고 위협 반응은 더 쉽게 일어나고 있다. 공포, 두려움에 대한 일반화가 진행된 것이다. A씨는 늘 걱정이 많고 항상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그 상황을 준비하며 살아왔다. 남편이 출근할 때 혹시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고, 아들이 혼자 자취할 때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자신이 길을 갈 때 혹시 음주운전 차가 와서 자신을 헤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하며, 동생이 등산하러 간다고 했는데 산에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걱정이 확산하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바닥났고 우울증으로 연결된 것이다. A씨의 만성적인 불안은 아들에 대한 걱정과 간섭으로 이어졌고 남편 사업에 대한 걱정으로 확장되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인식의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이다. 그녀의 걱정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 걱정이다. 일어나더라도 그녀가 상상하는 것처럼 극단의 상황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이 오류라는 것을 인식하고 본인이 인식의 오류를 확인하면 극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생이 등산을 갔는데 불안하다면 전화를 통해서나 다른 방법으로 동생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인식의 오류는 쉽게 사라진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이 가장 편안해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A씨는 종교에 마음을 두면 편해지곤 했다. 또는 화초를 가꾸는 평범한 일상을 즐겼다. 걱정 없이 가장 정상적인 생활이 무엇인지 그 시간을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객관화시켜야 한다. 그때 일어났던 사건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무서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사건 속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말하고 표현하고 그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사건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은 그저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A씨는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지 그 경험이 A씨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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