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교훈과 훈육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것도 있지만 어린 시절 몸에 배도록 교육받는 것은 본 것을 그대로 몸에 습득하고 배운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양육자가 건강한 성인 모델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모가 수치심에 기반을 둔 상호의존적인 양육자라면 가족관계에 있어서 특히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면에 상처받고 회복하지 못한 성인아이들은 오래전에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잊어버린다. ‘나됨,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녀들과 배우자에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다. 이런 성인 아이가 결혼할 때 부모의 모습이 투사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즉 부모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가족 체계의 역할을 보완할 수 있는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웅적인 보호자’는 ‘피해자’와 결혼하게 된다. 건강하지 못한 자아의 확장은 영웅적인 보호자가 되고 이런 영웅적인 보호자는 ‘피해자’를 찾아 자신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이다. ‘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자는 자신을 확실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영웅적인 보호자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피해자’도 역시 자신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엄청난 가치를 가지면서 밀고 당기는 시소게임을 결혼생활 내내 하게 된다. 그렇다면 영웅적인 보호자와 피해자가 만나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다고 하자. 영웅적인 보호자와 피해자인 부모는 상처받은 성인 아이다. 이런 상처받은 성인 아이는 그들이 바라던 건강하고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부모가 해 주지 않았던 것을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거울이 되고 자녀는 그 거울을 본 그대로 삶을 살아간다. 문제는 상처받은 성인 아이가 결혼 후 상대 배우자를 향한 기대와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게 될 때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자녀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A양의 가족이 그 예이다. A양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정부 산하기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어머니의 간섭은 날로 심해졌고 A양을 의지하는 정도가 과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딸에게 베푸는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과해서 A양은 회사를 핑계로 어머니와의 접촉시간을 줄였다. 경제적으로 가정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의 의존성은 더 심해졌고 밤마다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따로 나와서 독립할 생각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어머니의 성화로 진행되지 못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결혼의 기회도 있었지만 결혼을 해버리자니 부모님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A양을 만나고 나서야 집안의 분위기를 알게 되었고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A양 어머니의 행동이 이해됐다. A양의 아버지는 영웅적인 보호자였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부모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동생들에게는 희망이었고 부모에게는 자랑이었다. 사업으로 돈도 많이 벌었지만 영웅적 보호자의 기질이 동생들, 친척들, 어려운 친구들에게 사용되었고 집에 가져다주는 생활비는 소액이었다. 이런 이유로 부부의 싸움은 멈춰지지 않았다. A양의 어머니는 딸이 많은 집에 막내였다. 아들을 기대하고 낳았는데 딸이었기 때문에 A양의 어머니가 늘 들어야 했던 말은 “낳지 말았어야 해”라는 말이었다. 가족에게 관심 없는 딸이었고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딸이었다. A양의 어머니는 ‘피해자’였다. 영웅적인 아버지의 눈에는 피해자인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고 피해자인 어머니는 영웅적인 보호자인 아버지가 필요했다. 서로가 원하는 가치와 기대는 높았지만 모두 상처받은 성인 아이였다. 사업이 계속 실패하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영웅적인 큰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의 기대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고 부부의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이제 어머니의 희망은 A양이었다. 그러나 희망을 넘어서 딸에 대한 의존과 기대와 욕구는 더 심해졌다. A양의 가족 구조는 역기능적 가족 체계이다. 남편이고 아버지인 B씨는 영웅적 보호자로서 그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 성인 아이였고 아내이고 어머니인 C씨는 남편에 대한 보호를 기대했지만 자신의 욕구에 이루어지지 않아 보호와 기대의 방향을 딸인 A양에서 돌렸다. A양은 어머니 C씨의 대리 배우자였다. 더구나 A양은 부모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돌봐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도 A양은 자신이 그런 위치(어머니의 대리 배우자, 부모의 결혼생활을 유지 시키는 역할)에 있는지를 상담을 통해서 인지하게 된 것이다. 역기능 가정의 보편적인 결과는 각 구성원에게 경직된 역할들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각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또 허락되고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 무엇인지를 자신도 모르게 지시하고 지시받는다. A양은 책임감이 강한 자녀, 지나치게 성취 지향적인 자녀, 착한 자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 보호자의 역할을 한 것이다. 역기능적 가족 체계를 이해해야만 치료와 회복이 찾아온다. 우리는 가족 체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경직된 역할 포기해야 한다. 그 역할은 진정한 ‘나됨’을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든다. 보호자 역할을 그만두어야 하고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그 그늘이 어떤 형태인지 이해해야만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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