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것이 '죽음'이다. 이 과정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에 대한 이해는 현대에 오면서 긍정적인 관점의 변화가 많아졌다. '웰 다잉'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잘 죽는 것'이다.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자는 관점이다. 최근에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직업도 등장했다. '웰다잉 플래너'는 잘 죽은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한 때 많은 사람들에게 금기시되었던 단어이다. 그러나 죽음은 심리학자, 의사, 사회학자, 성직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죽음에 관해 토론하고,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죽음에 관한 많은 출판물도 죽음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은 당사자가 죽음에 대한 이해를 수용하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과 남겨진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보편적 욕구를 채워야 한다. 죽어가는 과정을 무시하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경험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는 것과 같다. 죽음에 대한 이해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며 본인과 가족들에게 죽음을 수용하도록 도울 수 있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죽음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다섯 가지는 죽음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단계가 모든 사람이 순차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이러한 다섯 단계가 조합된 형태로 경험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는 하나 이상의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고, 이미 경험한 앞선 단계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과정을 경험한다. 다섯 단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부정이다. 부정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초기의 충격 후에 나타나는 첫 번째 반응이다. 많은 사람은 이후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다루게 되지만, 죽음을 부정하는 것은 이후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첫 번째 단계인 부정의 과정에서 죽어 가는 사람의 가족과 친구의 태도가 중요하다. 가족과 친구들, 가까운 지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면 죽어 가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지지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볼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수용할 때 진정으로 그를 도울 수 있다. 두 번째는 분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주위 사람들은 그가 분노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인식해야 한다. 그 분노가 의사, 병원 관계자들, 친구, 자녀, 배우자 또는 신에게 향하더라도 그 욕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다른 곳으로 옮겨져 표현된 분노가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죽어 가는 사람과의 어떤 의미 있는 대화는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 감정을 지지하지 않거나 공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에 죽어가는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게 함으로써 도울 수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은 죽어 가는 사람이 자기 죽음을 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협상이다. 협상은 일반적으로 살 시간을 좀 더 주는 것에 대해서 자기 행동을 변화시키고 구체적으로 약속한 것에 대해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협상은 비밀스럽게 보통 신에게 만들어진다. 기본적으로 협상의 단계는 불가피한 종말을 연기하려는 시도다. 네 번째는 우울이다. 우울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상실을 직면하고, 이미 상실한 것과 앞으로 잃어버릴 것에 대해 슬퍼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마지막 계획을 세우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것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실에 대해 슬퍼할 자유만이 그들이 평화를 찾고 자기 죽음에 대한 현실을 수용하게 만들 수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수용이다. 어느 보고에 의하면 환자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앞의 단계들을 이어 나갈 지지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 우울하지도 않고 화나지도 않는 단계에 도달한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죽음에 대한 수용은 많은 갈등과 감정을 잘 이겨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용의 단계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피곤하고 약해지곤 한다. 그러나 수용은 복종이나 패배,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용은 현실을 다루는 한 형태이다. 이는 사람, 인생, 역할들로부터 점차적인 분리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죽음에 대해 결코 수용을 못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죽음에 대한 수용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용의 단계에 이르지 않는 환자는 때로 실패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죽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희망, 분노, 우울, 두려움, 부러움, 안심, 기대 등. 그들에게는 정서적인 큰 오르내림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계들을 죽어 가는 과정을 범주화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이 단계는 그들을 돕기 위한 하나의 준거 틀로 사용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위해 죽음의 단계를 아는 것은 그 단계들이 환자들이 경험할지 모르는 일반적인 길을 묘사하고 요약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들은 자연적인 진행 과정으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죽음을 앞둔 사람의 행동이 정상인지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도 사용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독특하고 다양한 것처럼 죽음의 과정도 독특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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