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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상담가의 기본 자세는 공감이다

by s코치 2022. 6. 15.

부모가 자기대상으로서 적절하게 공감함으로 반응해 주고 최적의 조절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면 환자의 자기 결손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 공감적인 자기대상은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지만 분석 상황에서 자기대상 역할은 분석가(또는 상담가)의 몫이다. 분석가(또는 상담가)의 기본자세는 적절히 반응하는 자기대상의 태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자기대상으로서 공감적으로 반응해 주고, 환자가 최적의 좌절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공감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환자의 감정과 생각들을 분석가(또는 상담가)가 경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경험 양식이다. 이런 경험이 가능한 것은 타인을 자기의 연장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내적 경험을 자기 자신의 내적 경험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공감을 정의해 보면 '대리 내성' 혹은 보다 쉽게 '다른 사람의 내적 삶을 같이 경험하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관찰자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환자가 자기성찰을 하는 것처럼 분석가가 환자의 내적 성찰을 대리로 경험하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공감의 기원은 초기 어머니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초기 아기는 어머니와 경계를 형성하지 못한 융합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아기는 어머니를 독립하여 인식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느낌과 생각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즉 어머니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들이 아기에게 그대로 주입된다. 그래서 어머니의 감정과 행동이 바로 아이 자신의 것이 된다. 이를 '어머니와의 일차적 공감'이라고 부른다. 일차적 공감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예를 들어 분석가(또는 상담가)가 환자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또한 성인과 유아의 심리상태가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에 유아의 심리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무리하게 유아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려고 하다간, 성인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틀을 가지고 유아의 심리를 설명하려는 우를 범하기 쉽다. 공감은 심리적 자료를 모으는 도구이지, 자료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물론 공감적 태도가 없이는 자료를 얻을 수 없다. 공감받지 못하는 환자가 자신의 깊은 내적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석가(또는 상담가)가 공감에만 머무른다면, 얻은 자료를 가지고 가설을 세우고 설명할 수 없다. 즉 공감을 넘어서야만 자료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분석가(또는 상담가)가 공감을 잘 못 하거나 공감 능력이 제한되는 이유는 분석가(또는 상담가) 자신의 자기애적 요소 때문이다. 공감 능력을 제한하는 자기애적 요소란 아직 분석가 안에 남아 있는 성숙하게 발달하지 못한 고태적 자기애 구조다. 분석가(또는 상담가) 자신의 고태적 자기에 집중하느라 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석가가 수련과 훈련을 통하여 자기애적 집중을 변형시켜 공감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분석가의 자기에 대한 성공적인 분석은 공감 능력의 확장 혹은 향상을 가져온다. 고태적 자기애 구조 중 이상화 대상이 지배적이었던 사람이 성공적으로 분석을 받은 경우,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많이 향상된다. 반면 과대 자기가 우세했던 경우엔 성공적인 분석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공감 능력이 우세해진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매사를 다 공감하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성숙한 성인이나 분석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현실 상황에 따라 공감적인 경험 방식과 비공감적인 경험 방식을 적절히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가가 공감과 그에 따르는 이해를 통해 직접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려 할 때, 환자는 오히려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분석가가 그런 시도를 하는 이유 또한 그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전능 환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공감을 통한 직접적인 치료 시도는 환자에게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자기심리학에서 말하는 공감은 그전에 분석가들이 말하던 공감과 다른 것인가? 엄밀히 말해서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일면에선, 자기심리학적 분석을 하는 분석가의 공감이 전통적인 분석가의 공감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정신분석에서 분석가는 환자가 전이를 통하여 분석가를 그의 욕동의 목표물로서 경험한다. 자기심리학이 출현하면서 분석가는 환자가 전이를 통하여 분석가를 욕동의 목표물뿐 아니라, 또한 자기대상으로 경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심리학이 새로운 종류의 공감을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심화시킨 것이다. 어떤 환자가 분석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분석가가 저에게 무관심하고 소홀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받았습니다." 사실, 분석가의 반응은 중립적이었지만, 전이관계 속에 있는 환자가 치료자를 어린 시절 그에게 공감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 분석가가 "너의 반응은 사실이 아니다."라든지 :너는 너의 아버지와 나를 혼동하고 있다."라고 환자에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것은 100미터 밖에 있든 눈앞에 있든 동일한 사람은 크기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전이관계가 형성된 이후 치료자는 그전에 감정적으로 중립적일 때의 치료자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너의 반응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표현은 환자 인식의 사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표현일 뿐 공감적인 반응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가깝게 느껴지고 그의 말이나 행동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혹은 "어릴 때 아버지가 너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나의 반응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라고 표현해 주는 것이 역동적인 해석이면서 동시에 환자 '경험의 원근법 주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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